[코스인코리아닷컴 전문위원 강학희] 연구자들은 그 시대의 가치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 가치에 부합하는 기술과 상품을 연구 개발한다. 큰 흐름의 메가 트랜드를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고 당장의 이슈를 잘 혼합해 연구와 개발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과 상품이 고객의 니즈(needs)나 원츠(wants)에 잘 들어 맞을 때 시장 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2년 반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국내의 대통령 선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 큰 이슈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이슈를 겪으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혁신 기술 개발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 포스트 팬데믹과 기술 혁신
우선 코로나19 사태로 소비 패턴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전미소매협회(NRF)의 발표에 따르면, 쇼핑의 두드러진 변화는 커브사이드 픽업(온라인 주문 시 직원이 제품을 가져다 차에 실어 주는 서비스)과 비접촉 서비스로 소비자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로 하는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제품 선택 기준이 과거보다 훨씬 과감해졌다고 오라클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편, 소비자의 새로운 브랜드 구입 시도는 2019년 32%에서 2020년 43%로 크게 증가해 신상품을 개발하는 각종 업계에 큰 시사점을 던졌다.
팬데믹으로 나타난 또 하나 특징은 가치를 공유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적 가치와 잘 부합하는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미국의 유명 컨설팅 업체인 엑센츄어(Accenture)의 글로벌 소비자 파동 조사에 따르면 펜데믹은 삶의 목표와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을 위한 것보다는 타인을 함께 고려한 선택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연대나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사회적 가치 창출로 이어질 윤리적 소비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매에 영향을 끼치는 가치들로는 품질, 가격, 안전, 건강, 개인화 서비스, 편의성, 신뢰, 평판 등을 생각할 수 있으나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여기에 더해 사회적 가치나 윤리적 가치가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다른 큰 이슈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한달 반이상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사자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인에게도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무엇보다 원자재의 수급 불안과 밀 등 식료품가격의 급등으로 화장품 산업에도 원부자재 가격의 폭등과 함께 수급 불안으로 우리에게 힘든 시련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3월 9일 치뤄진 대통령 선거 결과는 산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연령대별 지지율(선호 가치)이 매우 다르고, 특히 20~30대의 선택은 남녀 간에도 선택이 크게 다르게 나타났다. 20대 이하 남성은 A 후보를 36% 선택한 반면, 20대 이하 여성은 A 후보를 58%를 선택했으며, 30대의 경우도 남성의 43%가 A후보를 선택한 반면, 여성의 경우는 50%나 A후보를 선택했다. 2030 여성과 남성의 요구사항이나 가치관이 다름을 의미하며 이는 연령대별로 어떠한 가치가 상품이나 서비스에 담겨야 소비자의 선호 가치와 매치 되어 선택될 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또 중국 소비자의 소비형태가 크게 바뀌고 있다. 중국은 궈차오(國潮,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성향) 운동과 함께 엄청 까다로워진 인허가 규제로 한국 브랜드가 고전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의 향후 확진자 수의 추이가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되며 그에 맞는 대응전략이 필요하겠다.
연구개발자들은 자신의 소신이나 추구가치가 무엇인가보다 고객, 특히 여성 고객의 추구가치와 관심 사항이 무언지를 세심하게 파악해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작금의 가치관 변화에 따른 연구 개발 전략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 가치 공유 소비
기후변화와 함께 펜데믹은 기업이 더욱 친사회적이고 환경 친화적이길 요구하고 있다. 이미 친환경, 탄소절감은 우리 인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글로벌 아젠다가 됐다. 화석연료 유래의 수많은 화장품 소재나 원료도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화장품 패키지는 주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져 생분 해가 매우 더뎌 지구를 아프게 하고 있기에 화학 합성 플라스틱의 사용 금지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국내외 많은 업체들이 친환경적인 바이오플라스틱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천연물-고분자중합에 의한 바이오베이스플라스틱을 비롯해 미생물계 천연고분자를 이용한 생분해플라스틱, 산화생분해제/식물유래 등의 산화생분해 플라스틱 같은 친환경 소재가 지금의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의 조사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펜데믹과 함께 소비자들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경향에 대응하기 위해 업계는 더욱 다양한 콘셉트와 여러 형태의 융합 기술들을 개발해 시장에 소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안심감 소비
비단 생물이나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 조차도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졌으며 많은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19가 진정된다 해도 언젠가 유사한 팬데믹이 반복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방역과 면역력에 관한 관심이 모든 산업분야에서 고려돼야할 가치가 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3시간 살며, 천이나 나무에선 1일, 유리에선 2일, 스테인레스나 플라스틱 표면에선 4일 정도 산다고 한다. 반면, 구리 성분은 항균과 항바이러스 효과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화장품은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 소재를 용기나 단상자 또는 미용도구나 디바이스로 사용하고 있다. 플라스틱 패키지나 매끈한 단상자 등은 방역 측면을 고려하면 불리하다. 나노 구리용액을 플라스틱이나 재질의 표면에 스프레이 코팅하거나 소재 자체에 나노입자를 함입한 형태의 항바이러스 화장품 패키지가 보편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로 하기 위해 유통 단계는 한층 더 압축될 것이며 이는 Digital Transfor mation 기술 발달과 함께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Virgin-seal 상품이 증가할 것이고 사용 중 상품의 신선도를 최대로 하기 위해 냉장보존 상품이나 소용량 상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AIBased Beauty Care나 유전체 예방 항노화 기술 등의 Digital 미래 기술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비대면의 일상화
이번 펜데믹은 결국 엔데믹으로 바뀌면서 우리 삶은 정상화되겠지만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바뀌었던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상당 부분은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화장품 산업에서도 특히 유통분야에서 플랫폼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배달 서비스에 대한 효율성과 신뢰가 검증되면서 대형마트나 화장품 판매장의 점포 수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줄어 들것으로 예측된다.
또 면역과 건강에 대한 염려와 관심이 커지면서 헬스 산업이나 바이오 산업 등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생길 것이며 마이크로바이옴이나 유전체 정보 기술이 미래에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위생이나 환경에 대한 염려 증대로 먹거리들이 중간 매장을 거치지 않고 농장에서 가정으로 직송되는 것이 더욱 늘어날 것이며 농업 기술의 발달과 함께 smart-farm이 작은 컨테이너 형태로 각 가정이나 동네에 설치되어 소비자가 직접 생산자가 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예견해 볼 수 있겠다.
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중 패권경쟁, 물류대란 등으로 인한 불안정한 원부자재 공급에 대한 대비가 중요한 것 같다. 설혹, 수급불안정이 되더라도 기술적 측면에서 이를 극복할 각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세상은 늘 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SNS로 인해전 지구가 하나로 지구촌화 되면서 변화의 크기와 충격이 훨씬 커지고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기술자들은 경쟁력 높은 기술과 상품 개발을 위해 깊숙한 전문성과 함께 미래 예측력, 상상력에 대한 끈을 잠시도 놓아서는 안된다.
강학희 한국콜마 기술연구원 고문
전 대한화장품학회장
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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