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한해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 받은 강남 스타일! 하지만 이 보다 더 오래 동안 사랑받은 아줌마 스타일이 있다. 중년여성 열 명 중 여섯 명은 이 스타일을 고집할 정도. 그것은 바로 일명 아줌마 파마라 불리는 아줌마의 아이콘 뽀글이 파마다.
아주머니들은 머리를 기르지 않고 왜 짧은 파마머리를 하는 걸까? 남자들은 이해 할 수 없는 내 아내의 파마머리! 천편일률적이라 생각되는 아줌마 파마에도 역사가 있다.
1896년 고종황제의 단발령에 의해 남자들은 머리모양이 급속도로 변화했으나 여자들의 머리모양은 오랫동안 쪽머리를 유지해 왔다.

▲ 미용실 개업홍보용 사진 |
우리나라의 미용에 대한 관심은 한일합방 이후 외국에서 신문물을 보고 돌아온 신여성에 의해 시작됐는데 1933년 일본에서 미용연구를 하고 돌아온 오엽주 씨가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안에 문을 연 화신미용실이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실이 되면서 ‘아줌마 파마’가 시작됐다.
미용실이 영업을 시작하고 파마가 급속도로 유행하면서 내로라하는 여성들이 찾아와 머리를 맡겼으며 한 번 파마를 하는데 드는 비용이 5~6원으로 금가락지 하나 값과 엇비슷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농촌의 일반 노동자의 임금이 쌀 두되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이 간다. 따라서 미장원이 드나드는 사람은 극소수에 한정돼 있었고 그나마도 그 비용이 엄청 비쌌기 때문에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미용실에서 광고도 했는데 1920년경 서울 운니동에 위치한 경성 미용원이 처음 미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광고했으며 취급종목은 ‘머리털’이라고 적혀있었으나 처음에는 피부미용을 주로 했다.

▲ 경성미용원 광고 |
경성 미용원은 “얼굴을 곱게 하는 곳이올시다”로 광고문구가 돼 있어 얼굴을 다듬는 즉 미용에 관한 영업을 위주로 한 것임을 알 수가 있으며 요즈음의 피부관리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오엽주 미용실의 영업은 파마를 위주로 한 그야말로 머리의 손질을 위주로 한 영업이었다.
한편, 일제시기 서양의 퇴폐풍조라며 사치품으로 금지되기도 했던 파마는 해방 이후 1950~60년대 여성들은 점점 파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일명 숯파마가 유행했다. 초기에는 로트에 머리를 말고, 약을 바른 뒤 약을 말리기 위해 그 위에 숯을 담은 불그릇을 올려놓았는데 그래서 ‘불파마’라고도 했다.
숯파마는 지금의 번개탄과 비슷한 것으로 석탄가루를 가늘게 반죽해서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잘라서 거기에 불을 붙인 다음 파마집게 양쪽에 두 개씩 네 개를 넣어 은박지를 대고 머리를 마는 방식이었다.

▲ 미용학원 원생들의 파마 연습 장면 |
하지만 이 방식은 뜨거운 열로 인해 머리가 끊어지거나 숯의 재로 인해 화재가 날수 있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여성들의 파마에 대한 욕구를 꺾을 수는 없었고 미용실 벽면에 ‘불조심’이라는 벽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당시 파마를 강행했던 당시 ‘신여성’들을 보면 파마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만하다.
현재는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파마가 유행이지만 당시에는 ‘아줌마 파마’로 불리는 꼬불꼬불한 파마 한 가지밖에 없었고 전기가 부족했던 시절, 숯불에 파마 집게를 데운 뒤 은박지를 대고 머리를 마는 식이었다.
또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파마 비용은 비싸 가난한 우리네 아주머니들은 한번 파마를 할 때 풀리지 않게 최대한 뽀글뽀글 하게 말아 파마가 오래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줌마의 아이콘 ‘파마’가 시작되고 아주머니들은 머리를 기르지 않고 짧은 파마머리를 하면서 모발에 웨이브가 생겨 볼륨감이 커지고 커트 후 손질이 쉬워 머리숱이 적어지고 모발에 힘이 없는 아줌마들에게는 이를 만회하려고 파마를 하면서 오늘날 아주머니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이다.
조정혜 나우코스 영업기획실 부장
필자 약력 :
성결대학교 출강, 로레알 파리 본사(국제 상품기획부)
레브론, LG생활건강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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