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전문위원 이창석] 2000년대 나노 기술이 등장하면서 화장품에도 나노기술이 적용된 이른바 ‘나노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비롯해 크고 작은 많은 화장품 기업이 나노화 장품 사업에 뛰어들어 연구개발부터 제품출시까지 속도를 냈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나노‘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특히 나노화장품이 정의하는 기술적 특이성과 장단점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에게 궁금한 시기였다. 지금 들어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나노화장품’ 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현재 어느 단계까지 발전했을까?
먼저 나노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노’가 주는 추상적인 개념은 ‘매우 작다’ 라는 느낌일 것이다. 실제로 ‘나노’라는 단어는 ‘난쟁이’ 또는 ‘극히 작은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과학적으로 사용되는 나노미터(nm)는 1미터보다 10억배 정도 작은 크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의 직경이 80,000nm 내외, 세균의 크기가 1,000nm 내외임을 감안한다면 nm가 의미하는 크기는 현미경으로도 관찰하기 어려운 크기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나노기술 또는 나노물질이라 함은 1~100nm 사이의 범위로 정의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처럼 나노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원자와 분자 단위의 물질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다루는 과학기술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DNA와 단백질, 펩타이드 등을 다루는 분자생물학 분야라던지 나노크기의 재료과학을 다루는 재료공학이나 고분자공학 분야, 탄소나노튜브나 에너지 등을 연구하는 정밀화학분야가 나노기술을 다루는 분야이다. 이렇게 나노 개념이 관련 전공 분야에서는 새로울 것도 없는데 화장품에서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노화장품’이란 쉽게 나노 단위 크기의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나노기술이 화장품에 적용돼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왜 그렇게 많은 화장품 기업들이 나노화장품 개발에 열을 올렸던 것일까? 먼저 화장품에 많이 쓰이는 티타늄다이옥사이드(TiO2)에 대해 알아 보자. 티타늄다이옥사이드는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광물인데 자외선을 반사시키거나 산란시키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 성분으로 널리 사용된다.
반면, 나노-티타늄다이옥사이드 또한 자연에 존재하는데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크기는 티타늄다이옥사이드보다 훨씬 작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나노-티타늄다이옥사이드는 발림성이 좋고 백탁 현상을 감소시켜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으며 티타늄다이옥사이드보다 약 100배 이상 효능이 우수하다고 여겨진다. 자외선 차단제의 경우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백탁현상 유무인데 자외선 차단제를 선택할 때 이러한 나노-티타늄다이옥사이드의 장점이 소비자에게 결정적인 제품 구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듯 나노 수준으로 물질이 작아진다는 것은 화장품에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작용된다. 나노화장품 기술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나노에멀젼’이다. 우유는 지방 입자의 작은 물방울이 물에 부유하는 나노에멀젼의 한 예시이다. 화장품의 나노에멀젼은 1,000nm 이하의 소재를 활용해 에멀젼화한 것으로 보습제처럼 오일 함량을 높일 수 있는 매우 작은 물방울과 기름 방울이 균질하게 존재하는 형태인데 이런 제형은 산뜻한 느낌을 제공한다.
또 리포좀(liposome) 또는 나노좀(nanosome) 이라고 불리는 작은 운반체에 손상되기 쉬운 성분을 채워 안정화시킨 뒤 이를 표피층에서 방출시키는 고성능 보습제도 나노기술이 적용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나노에멀젼과 나노좀은 피부에 도포 시 용해돼 화장품에 사용하는 나노 물질의 법적 정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다른 예시로는 Bacterial nanocellulose(BNC)가 있다. BNC는 비병원성 박테리아에 의해 생산되는 다당류를 의미하는데 이 다당류는 화장품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합성 고분자를 대체할 유망한 후보로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화장품에서 BNC는 주로 활성 성분의 운반 체로 그 적용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이렇듯 나노 기술을 적용한 화장품 연구분야에서 가장 공통된 이슈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피부 깊숙이 침투해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이른바 DDS(Drug Delievery System) 라고 하는 경피흡수율 개선 문제는 오래 전부터 많은 화장품 업체에서 연구 타겟으로 집중돼 오고 있다. 기존 화장품의 경우 피부주름 개선, 미백 등 기능성 활성물질의 용해가 쉽지 않고 피부 흡수도가 매우 낮은 단점을 가진다.
또 제품 안정도가 떨어져 유용한 성분과 기타 성분이 분리되는 등 제형화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는 게 나노기술인데 나노구조체는 피부 세포의 간격보다 훨씬 작고 화학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피부 세포층을 선택적으로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경피흡수율을 높이는데 유용하다.
‘에토좀 (ethosome)’ 또는 ‘탄성리포좀’은 리포좀에서 진화해 에탄올에 인지질을 용해시켜 피부 침투시 입자가 각질층을 보다 잘 투과하도록 탄력적으로 변형이 쉬운 소포체로 만든 제형으로 각질 세포 사이 틈을 잘 통과해 피부 더 깊은 곳까지 활성성분의 흡수율을 높이는 나노기술이다. ‘니오좀 (niosome)’은 표면막이 인지질(phospholipid)이 아닌 비이온성 계면활성제로 구성된 소재로 리포좀에 비해 화학적으로 안정화된 특성으로 환경적인 변수에 대한 안전성을 높인 형태다.
피부 침투가 어려운 친수성 활성성분의 투과 시용해도를 높여 피부 흡수율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나노기술 중에서 가장 이슈화된 분야중 하나인 ‘엑소좀(exosome)’, ‘엑토좀 (ectosome)’은 세포가 자연적으로 생성해 내는 물질운반체로써 세포간의 신호전달을 위해 분비하는 생체 물질이다. 이 운반체 안에는 다양한 성장인자나 지질, 호르몬 등 세포가 분비해서 다른 곳으로 전달해야할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이 담겨져 있다.
엑소좀과 엑토좀은 약 100nm 전후의 다양한 크기로 존재하며 리포좀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의 이중 지질막 구조로 존재하므로 이를 활용한다면 생체 친화적으로 유용성분을 피부 깊숙이 보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안정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식물에서 분리된 엑소좀이 포함된 화장품이나 제대혈 줄기세포 배양액 엑소좀을 활용한 제품 출시가 눈에 띄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나노 물질은 인체에 안전한가 이다. 나노기술의 안전성은 전 세계 규제 기관에 의해 지속적으로 검토되고 있는데 나노-티타늄디옥사이드와 징크옥사이드의 경우 1999년부터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 이후로 안전성에 대한 평가가 광범위하게 이뤄져 유전자 독성과 광독성 등 인체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물질의 입자가 점점 더 작아짐에 따라 물질의 특성과 성질이 동일한 물질의 큰 입자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크기 변화가 성질이 다른 물질로 변한다고 하면 안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각각의 물질을 사례별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나노 성분이 세포간 사이 지질 통과가 아닌 세포막과 핵막을 통과해 유전자 사이에 끼어들어가 돌연변이 까지 유발할 수 있다면 암세포와 같은 세포변형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나노입자의 철저한 물성과 작용 기전, 안전성에 대한 약리학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나노펩타이드, 나노셀룰로오스, 나노튜브, 나노골드 등(비록 마케팅 언어가 포함돼 있을지라도)화장품 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나노물질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고 있다. 원래 나노물질은 우리 주변에서 연기나 먼지 등에서 쉽게 노출돼 접하고 있는 자연현상이다. 다만, 나노라는 개념의 물질이 인체 입장에서 좋은 성분만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적 투과가 된다면 좋겠지만 다른 형태로 생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노입자가 분자보다는 훨씬 큰 입자임은 분명하고 사람의 피부를 쉽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다수를 이루고 있으므로 막연한 우려와 공포심보다는 철저한 기술개발과 검증을 통해 인체에 유리한 면을 극대화시킨다면 화장품 산업에서 지금보다 더 각광받는 미래소재로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창석 을지대학교 바이오융합대학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화장품 세포효능평가 및 기업부설 효능연구소 자문
대한미용학회 편집위원장
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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